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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 2018 해석

by 느느팀 2024. 2. 21.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냉전의 시대, 비밀스러운 연구를 진행하다

 영화의 배경은 1962년, 냉전이 정점으로 달려가고 있던 시기가 배경이 된다. 1957년 소련이 먼저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면서 우주 시대와 우주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연구 분야에도 경쟁이 심화하였다. 미국의 항구도시 볼티모어에 혼자 살고 있는 엘라이자는 귀는 들리지만, 말은 못 하는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정부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청소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옆방에 살고 있는 자일스와 친한 친구 관계이다. 자일스는 사진 디지털 이미지가 개발되면서, 혹은 성소수자 성향으로 직장에서 자리를 잃은 늙은 포스터 미술가이다. 그녀를 자매처럼 챙기는 직장 동료인 젤다와 함께 어느 날 비밀스러운 연구실 청소를 하게 되고, 그곳에서 신비한 생명체를 만나게 된다. 신비한 생명체와 엘라이자는 영혼이 통하는 느낌을 받게 되고, 은밀한 데이트를 이어나가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신비한 생명체를 감시하는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가 이 생명체를 학대하게 되고, 결국은 해부하려는 단계에 이르게 되자 사랑하는 그를 살리기 위해 엘라이자는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신의 형상

 스트릭랜드는 "우리는 신의 이미지를 본떠서 창조됐잖아"라는 이야기를 흑인 여성 청소노동자인 젤다에게 하면서 "아마 당신보다는 나를 닮은 쪽이겠지"라고 한다. 스트릭랜드는 백인 남성이며, 그는 백인 남성을 인간의 이상형으로 생각한다. 이는 성경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는 내용을 토대로 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본인의 기준에 맞지 않는 존재들을 무시하고 하대한다. 하지만 신비한 생명체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발현된 것을 본 스트릭랜드가 자신이 신이 아닌, 자신이 괴롭히던 존재가 신적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제는 많이 식상해진 내용이긴 하지만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이 개념을 인지하고 깨닫게 되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1960년대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며 요즘에 이르러서도 많이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었지만, 표면적으로는 가능할지라도 정작 내면 깊은 곳에서 그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불편한 진실이겠다. 그런 면에서 영화가 던져주는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라는 질문도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랑의 모양 시 해석

 영화의 모든 면이 인상적이었지만, 세 장면 정도를 꼽자면 첫째는 엘라이자가 자일스에게 수어로 격렬하게 자신은 무엇인지 대해 토로하는 장면이고, 최고의 장면은 욕실에서의 아름다운 포옹씬, 마지막은 바로 엔딩 크레딧 직전에 나온 시다. 엘라이자의 토로 장면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심경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욕실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로 영상, 음악, 연기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고 할 수 있겠으며, 엔딩 크레딧에서 등장하는 시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페르시아 시인  하킴 사나이(Hakim Sanai 1080~1131) 시이다. 멋진 사나이.

 

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 없네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내 곁에는 온통 그대뿐

I find you all around me.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내 마음 겸허하게 하네

It humbles my heart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For you are everywhere...

 

 그대==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사랑하는 대상은 내 주변과 눈을 온통 채우고 있기 때문에 그 모양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사실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모양이 어떠한지 생각하지 않게 된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인간이 정해놓은 결핍마저 보이지 않게 된다. 엘라이자와 신비한 생명체 사이에서는 서로의 결핍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물은 어딘가에 담겨 있을 때 담겨 있는 물의 모양을 볼 수 있지만, 본디 형상을 규정할 수는 없다. 물에 흠뻑 잠겨있다면 그저 자신과 자신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물만 오롯이 존재할 뿐이다. 주위의 모든 것이 다 물이기 때문에 물의 모양을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상대방의 모양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이다. 물이 그 둘을 둘러쌓고 있듯이 엘라자이와 신비한 생명체는 서로를 서로로 온통 채우고 있다. 그래서 외적인 결핍은 그들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상대의 모습이 양서류 인간인지, 언어장애를 가진 인간인지를 알 수가 없이 그저 사랑의 대상으로만 그 주변에 가득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감정을 영화는 매우 아름답게 표현한다. 작은 욕실에 물을 가득 채워 함께 물에 잠긴다. 물의 형상을 어느 정도 규정할 수 있지만, 그 물은 주체할 수 없이 문틈으로 흘러 나가고 극장까지 적셔버린다.

 항구에서 신비한 생명체가 엘라이자를 안고 물에 뛰어드는 장면은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죽음도 뛰어넘은 상황에서의 둘은 바다로 향하게 될 것이다. 주위의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온통 물뿐인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사랑의 엄청난 존재감을 느끼게 되면 본인은 스스로 작아져 겸허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행복하고 감사한 겸허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를 누군가는 기괴하다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마 이 영화를 사랑하는 모양이다.